강으로~ 바다로~*

낚시의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등급...

산골 낚시꾼 2009. 1. 31. 11:04
이외수님의 수필집에 있는 글입니다...
----------------------------------------------------------------
낚시에는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의 등급이 있다.
바둑이나 무술이 수 많은 등급을 거쳐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듯,
낚시도 신선(神仙)의 도(道)에 이른다면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의 14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조졸(釣卒), 조사(釣肆), 조마(釣痲), 조상(釣孀), 조포(釣怖), 조차(釣且), 조궁(釣窮)을 거쳐
남작(藍作),자작(慈作),백작(百作),후작(厚作), 공작(空作), 그리고 조성(釣聖)과 조선(釣仙)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구조오작위이다.
 
즉, 조졸, 조사, 조마, 조상, 조포, 조차, 조궁, 조성, 조선이 구조(九釣)이고,
남작,자작,백작,후작, 공작이 오작위(五作尉)에 속하는 것이다.
 
 
九釣五作慰 (낚시14단계)
 
01. 조졸(釣卒)
초보자를 일컫는 말로서 한 마디로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아직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빵점이다.
낚싯대를 들고 고기만 잡으면 무조건 낚시꾼인줄 아는 것도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건말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서 낚시질을 때려치우고 술부터 찾는다.
그리고 취하면 그제서야 분이 풀려서 고성방가를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가장 낚싯줄이 많이 엉키거나 바늘이 옷에 걸리거나
초리대 끝이 망가져 버리는 수가 많은데,
마음가짐에 따라 낚싯대나 낚싯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동작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낚싯대나 낚싯줄도 제멋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 번 낚시질을 다니고, 그러다가 재미가 붙기 시작해서
몇번 좋은 수확을 거두거나 대어라도 두어 마리 낚게 되면 사람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되고,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제법 신경을 쓰게 될 뿐만 아니라
공연히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히 고상하고 낭만적인 존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02. 조사(釣肆)
조사(釣士) 아닌 방자할 사(肆)자가 붙는 단계.
낚시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 어디서든 낚시얘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온다'라고 말해도 될 것을 반드시 '어신이 온다'라고 말하고,
'고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라고 말해도 될 것을,
반드시 '조황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단계도 바로 이 단계이며,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이다.
하지만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가 잡은 것보다 큰 놈을 올리거나 수확이 잦을 경우는
대번에 의기소침해져 버리는 것도 바로 이 단계다.
 
03. 조마(釣麻)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디서든 찌가 보여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낚시질을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연휴 때에 친구가 결혼을 하면
정강이라도 한 대 걷어차 버리고 싶을 정도다.
물론 적당한 구실을 붙여 되도록 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낚시질을 간다.
더러는 결근도 불사한다.
 
04. 조상(釣孀)
과부상(孀). 드디어 아내는 주말과부=필수, 주중과부=선택이 된다.
직장생활이 제대로 될리 만무, 집에 쌀이 있는지, 자식이 대학에 붙었는지,
아내가 이혼소송을 했는지 어쨌는지….
 
05. 조포(釣怖)
공포를 느끼고 절제를 시작한다.
낚시가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낚시대를 접어둔다.
아내와 자식들은 "돌아온 아빠"를 기쁨 반, 우려 반으로 반긴다.
 
06. 조차(釣且)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 단계. 행동도 마음가짐도 무르익어 있다.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기만 하면 고기보다 세월이 먼저 와서 낚시 바늘에 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 낚을 수는 없는 단계.
고기는 방생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은 방생해 주지 못하는 단계.
 
07. 조궁(釣窮)
다할 궁(窮).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을 수 있는 수준의 단계.
낚시를 통해 삶의 진리를 하나 둘 깨닫기 시작한다.
초보 낚시꾼의 때를 완전히 벗어 버리는 것도 이때.
 
08. 남작(藍作)
인생을 담고 세월을 품는 넉넉한 바구니가 가슴에 있다.
펼쳐진 자연 앞에 한 없는 겸허함을 느낀다.
술을 즐기되 결코 취하지 않으며 사람과 쉽게 친하되 경망해지지 않는다.
 
09. 자작(慈作)
마음에 자비의 싹이 튼다.
거짓없는 자연과 한 몸이 된다.
잡은 고기를 방생하면서 자기 자신까지 방생할 수 있다.
욕심이 사라지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낚시대를 타고 전해온다.
 
10. 백작(百作)
마음 안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든다.
아직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으니, 인생의 지혜를 하나 하나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자연도 세월도 한 몸이 된다.
 
11. 후작(厚作)
마음 안에 두터운 믿음을 만드는 단계.
낚시의 도(道)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만 결코 지혜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으며,
몸가짐 하나에도 연륜과 무게가 엿보인다.
 
12. 공작(空作)
모든 것을 다 비우는 무아의 지경.
이쯤 되면 이미 입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
지나온 낚시 인생을 무심한 미소로 돌아 보며 신선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13. 조선(釣仙)
수많은 낚시의 희로애락을 겪은 후에 드디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니,
이는 도인이나 신선이 됨을 뜻한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어느 곳이나 무릉도원이요,
낚시대를 걷으면 어느 곳이나 삶의 안식처가 된다.
 
14. 조성(釣聖)
낚시와 자연이 엮어내는 기본원리는 터득하고, 그 순결함에 즐거워 한다.
간혹 낚시를 할 경우에는 양팔 길이의 대나무에 두꺼운 무명줄을 감아
마당 수채구멍 근처에서 파낸 몇마리 지렁이를 들고 집앞의 개울로 즐거이 나간다....